동대문 시장, 길을 헤매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하루
오랜만에 지인과 함께 동대문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동대문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동대문종합시장이었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 와본 곳이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어디가 어디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3층과 4층을 올라갔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오고, 원단을 찾다가 부자재를 구경하고, 또 마음에 드는 소품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어느 건물에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여러 개의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건물 안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쪽 건물, 저쪽 건물을 지그재그로 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적지를 정해놓고 빠르게 움직였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을 천천히 구경하며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모자와 원단,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가게들

동대문종합시장 안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모자들, 종류별로 쌓여 있는 원단, 레이스와 자수, 작은 부자재들까지 눈길을 끄는 것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원래는 필요한 원단을 사러 간 것이었는데, 막상 시장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원단보다도 주변의 풍경과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됐습니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그날 시장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조금은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천장 가까이까지 쌓인 모자들.
투명한 칸칸마다 정리된 레이스와 자수 원단.
그리고 통로를 따라 늘어선 가게들.

요즘의 깔끔한 쇼핑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동대문 시장의 매력은 바로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사러 갔는지보다, 돌아다니다가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지가 더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패션의 원조, 평화시장에서 느낀 또 다른 시간
동대문종합시장을 나와 지인과 함께 평화시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시장을 오가고 계셔서 처음에는 조금 놀랐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찾는 패션의 중심지라는 동대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옷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가동이었습니다.
그 분들만의 공감대가 있는 차별화된 상가 건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동대문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일이 쌓여온 곳입니다.
누군가는 원단을 팔고, 누군가는 옷을 만들고, 누군가는 작은 가게를 지키며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새로운 건물과 브랜드가 들어서면서 동대문도 계속 변하고 있지만, 시장 곳곳에는 아직 예전의 시간이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문을 닫은 상가도 꽤 많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음에는 시장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날을 골라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내린 비, 그리고 DDP에서의 잠깐의 방황
DDP로 이동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것이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고 복잡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잠시 헤매게 됐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시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조금 우왕좌왕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공간들을 지인과 함께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도 그렇지만, 가끔은 계획에서 벗어난 시간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날의 동대문도 그랬습니다.
원단을 사러 갔다가 모자를 구경하고,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평화시장까지 가고,
비를 피하려다 DDP를 구경하고,
결국 청계천을 따라 걷게 됐습니다.
처음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곳을 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달라진 동대문, 그리고 사라져가는 시장의 풍경
오랜만에 다시 찾은 동대문은 확실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주변 공간도 점점 정비되고 있었습니다.
예전의 동대문은 조금 더 복잡하고 정신없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사람사는 모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고, 좁은 통로를 따라 걷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옷감을 나르는 사람들.
그런 자연스럽고 조금은 투박했던 시장의 풍경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해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오래된 시장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까지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함께 남아 있을 때, 그 도시만의 이야기도 더 풍부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비가 그친 뒤, 청계천을 따라 신설동까지
풍물시장이 1.5km라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그 표지판만 믿고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깝겠거니 생각했지만, 걷다 보니 생각보다 꽤 먼 길이었습니다.
그곳은 동묘 근처의 시장이었습니다.
간 김에 동묘공원도 구경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동묘가 삼국지의 관우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비가 그쳤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온 비 때문인지 상인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빨리 끝난 풍물시장 구경이 아쉬운 그때 청계천이 보였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저희는 청계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잠깐만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어느새 꽤 먼 곳까지 와 있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데도 물과 돌, 풀들이 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들면 오래된 구조물과 아파트, 그리고 새로운 건물들이 함께 보였습니다.
동대문에서 시작한 하루가 어느새 신설동역 근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생각보다 많이 걸었지만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원단을 사러 간 하루였지만, 결국 원단만 사고 돌아온 날은 아니었습니다.
시장 안에서 길을 잃었고, 비 때문에 계획이 바뀌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곳을 보게 됐습니다.
혼자였다면 그냥 돌아왔을지도 모르는 길도 지인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못 가본 시장도 많고, 문을 닫아 들어가지 못한 상가도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길로 들어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대문은 아마도 계획한 길대로 움직이기보다, 조금 헤매면서 걷는 편이 더 재미있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 한 번 더 오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에는 문을 닫은 상가들도 모두 열려 있는 날, 조금 더 여유롭게 동대문 시장을 다시 걸어봐야겠습니다.
오늘의 동대문 한 줄 기록
«목적지를 향해 가는 날보다, 길을 잃어서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지인과 함께 걸었던 동대문이 딱 그런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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