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평 독립공원이 왜 1/3로 줄었나?
사당동 대림아파트 임장을 하다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삼일공원을 우연히 둘러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삼일공원은 주민들이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는 근린생활공원으로 보이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에는 생각보다 길고 짠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사당동 삼일공원의 역사와 함께, 이 공원의 역사가 현재의 사당동 부동산의 도시개발과
더불어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1. 삼일공원의 시작은 ‘공원 조성’이 아니라 3·1운동 정신이었다
삼일공원의 시작은 1967년 6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3·1운동에 참여해 형을 받았던 여성 독립운동가 약 40명이 현재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일대
약 3만 평의 국유임야에 무궁화와 소나무 등 약 1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최저 65세에서 최고 78세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나무를 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경부터 매년 3·1절을 계기로 모임을 이어오던 이들은 전국삼일운동 여성참가자봉사회를 결성했고,
남산 어린이놀이터와 청와대 뜰 등 여러 장소에 무궁화를 심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을 자손만대에 물려줄 수 있는 녹색의 유산을 만들자.
그 결과가 바로 삼일공원 계획이었습니다.

2.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여기자 최은희가 제안한 ‘독립공원’
당시 삼일공원 조성 운동의 중심에는 최은희 여사가 있었습니다.
최은희 여사는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25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여기자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최은희 여사는 1967년 4월 15일 『동아일보』에 「독립공원 설립을 제의한다」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는 당시 서울 인근의 헐벗은 야산을 선정해 매년 나무를 심고 가꾸면, 수십 년 후에는 울창한 숲이 되어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이 서울시의 관심을 받으면서 당시 서울로 막 편입된 사당동 일대에 공원 조성이 추진됐습니다.
1968년에는 건설부로부터 정식으로 공원 허가도 받았습니다.

3. 처음 계획은 지금보다 훨씬 큰 ‘3만 평 독립공원’이었다
당초 삼일공원은 현재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대규모 역사공원으로 계획됐습니다.
공원 안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습니다.
- 독립각
- 공원 유래비
- 분수
- 벤치
- 대규모 무궁화 식재 공간
특히 매우 상징적인 계획도 있었습니다.
무궁화 약 1천 그루를 이용해 한반도 모양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하늘에서 보면
‘삼일공원’이라는 글자 형태가 나타나도록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공원 외곽에는 리기다소나무 약 5천 그루를 심어 자연스럽게 울타리를 만들 예정이었습니다.
서울시와 『조선일보』의 후원 아래 사회 각계에서 헌수를 받아 약 7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습니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삼일공원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동네 공원과는 전혀 다른 규모와 상징성을 가진
서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기념공원이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4. 그런데 1968년 10월, 공원 예정지가 철거민 정착지로 바뀌었다

삼일공원의 역사는 바로 이 시점부터 급격하게 바뀝니다.
1968년 10월, 서울시는 삼일공원 부지 일부를 용산구 서부이촌동 철거민들의 정착지로 지정하고
약 500가구의 입주를 허락했습니다.
당초 서울시는 약 300가구에 입주증을 발부했지만, 겨울을 지나면서 추가 입주가 이어졌습니다.
이후 공원 부지에는 무허가 판잣집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서울시는 뒤늦게 이를 행정착오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상황은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철거 지시가 내려졌지만 철거 이후 주민들의 주거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까지 이어지면서 실제 철거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무허가 주택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결국 원래 공원을 조성하려 했던 약 3만 평의 공간은 2천여 영세민 가구가 생활하는 빈민정착촌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위해 심었던 나무들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5. 1969년, 독립운동가들은 다시 묘목을 들고 돌아왔다
공원이 사실상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3·1운동에 참여했던 할머니들은 뜻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69년 봄, 이들은 다시 묘목을 들고 삼일공원 예정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원 부지는 주민들의 생존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돌무더기를 쌓고 생존권을 주장했고, 독립운동가들은 결국 나무를 심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들은 당국에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영세민들의 주거 대책은 별도로 마련하고, 삼일공원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달라.
서울시는 당시 조성 중이던 광주대단지 등에 대체 부지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행정기관에서는 아파트를 건설해 일부 주민을 이주시킨 뒤 나머지를 철거하는 방안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실제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삼일공원 예정지는 오랜 기간 빈민정착촌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6. 사당동 삼일공원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동산 이야기
여기서부터는 현재의 사당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 역사는 1960~1980년대 서울의 도시개발 과정이 사당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당시 서울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도심 재개발과 도시정비가 진행되면서 기존 거주민들은 철거를 경험했고, 이주할 곳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울 외곽과 당시 개발이 덜 된 지역에는 대규모 철거민 정착촌과 무허가 주택지가 형성됐습니다.
사당동 삼일공원 예정지도 그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즉,
공원 예정지 → 철거민 이주 → 무허가 주택 증가 → 빈민정착촌 형성
이라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후 다시 도시정비가 진행됩니다.
불량주택 정비 → 재개발 → 주거환경 변화 → 공원 재조성
이 흐름이 바로 현재 사당동의 도시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7. 1980년대, 재개발과 함께 삼일공원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삼일공원을 처음 추진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마다 서너 명씩 세상을 떠났고, 1984년에는 삼일공원 조성 운동을 이끌었던 최은희 여사도 별세했습니다.
삼일공원의 이름 역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습니다.
하지만 최은희 여사의 아들 이달순 씨는 어머니가 생전까지 안타까워했던 삼일공원을 다시 만들기 위해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공원 재건을 건의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변화가 시작됩니다.
사당동 일대에서 불량주택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과거 빈민정착촌이 형성됐던
지역의 도시 구조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88년 공원 부지 일대의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서울시는 당초
공원 부지 일부를 다시 공원용지로 환원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계획했던 약 3만 평 전체가 공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시는 약 9천 평 규모의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8. 23년 만에 완성된 삼일공원
1990년 겨울.
1967년 처음 나무를 심었던 이후 약 23년 만에 삼일공원 조성공사가 마무리됩니다.
비록 처음 계획했던 대규모 독립공원과는 달라졌지만, 삼일공원은 결국 다시 시민들의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1라이온스클럽과 추계문화사업회는 말년까지 3·1운동 정신을 지키려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3·1기념탑을 세웠습니다.
9. 현재 삼일공원은 다시 ‘3·1운동 기념공원’으로 정비되고 있다
삼일공원은 1990년 조성 이후에도 계속 변화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삼일공원은 다시 ‘3·1운동 기념 테마공원’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총 1억3천만 원을 투입해 다음과 같은 시설이 설치됐습니다.
- 높이 25m의 대형 국기게양대
- 독립선언서 기념비
- 무궁화와 다양한 수목 식재
- 산책로 주변 경관 개선
2018년에는 한국여기자협회가 유관순 열사상을 건립했습니다.
이는 특히 의미가 큽니다.
삼일공원의 출발 자체가 3·1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여기자였던 최은희 여사의 활동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공원은 다시 한번 정비됩니다.
공원 내에는 무궁화동산이 조성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3·1운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회전형·퍼즐형 안내판도 설치됐습니다.
또한 인근 남성초등학교 진입로 약 100m의 공원 옹벽에는 3·1운동을 주제로 한 타일벽화가 조성됐습니다.
단순한 공원 정비가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에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든 역사적 통학로가 된 것입니다.
12. 삼일공원은 사당동의 ‘시간’을 담고 있는 장소다
저는 삼일공원을 단순한 동네 공원이라고 소개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세 가지 역사가 겹쳐 있습니다.
첫 번째, 독립운동의 역사
3·1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후손에게 독립정신을 남기기 위해 나무를 심었습니다.
두 번째, 서울 도시화에 희생된 역사
도시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 문제가 공원 예정지를 대규모 빈민정착촌으로 바꾸었습니다.
세 번째, 사당동 도시정비의 역사
불량주택 재개발과 도시정비를 거치면서 일부 부지가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고, 현재의 사당동 주거환경이 형성됐습니다.
마무리
사당동 삼일공원은 처음부터 단순한 생활권 근린공원이 아니었습니다.
1967년, 3·1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나무를 심으며 시작한 이곳은
원래 약 3만 평 규모의 독립공원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철거민 정책과 도시화 과정에서 공원 예정지는 빈민정착촌으로 변했고, 수많은 나무가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노력과 사당동 일대의 도시정비사업을 거쳐, 삼일공원은 23년 만에
다시 시민들의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3·1기념탑, 독립선언서 기념비, 태극기 게양대, 유관순 열사상과 무궁화동산 등을 통해 다시
3·1운동 정신을 기억하는 역사공원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당동의 부동산과 도시개발을 이야기할 때 앞으로 삼일공원은 단순히 “공원이 가까운 입지”가 아니라,
“사당동이 어떻게 도시화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주거환경을 갖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도시계획의 기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삼일공원 주요 연표
연도주요 내용
| 1967년 4월 | 최은희 여사, 「독립공원 설립을 제의한다」 기고 |
| 1967년 6월경 | 3·1운동 참여 여성 약 40명, 사당동 국유임야에 나무 식재 |
| 1968년 | 정식 공원 허가 |
| 1968년 10월 | 서부이촌동 철거민 일부 공원부지 이주 |
| 1969년 | 무허가 주택 증가, 공원 조성 사실상 중단 |
| 1970년대 | 공원부지가 빈민정착촌으로 자리 잡음 |
| 1984년 | 최은희 여사 별세 |
| 1980년대 후반 | 사당동 불량주택 재개발과 함께 공원 재조성 추진 |
| 1988년 | 약 9천 평 규모로 공원부지 환원 |
| 1990년 겨울 | 약 23년 만에 공원 조성공사 완료 |
| 2015~2017년 | 3·1운동 기념 테마공원 정비 |
| 2018년 | 유관순 열사상 건립 |
| 2019년 | 3·1운동 100주년 기념 무궁화동산·역사 안내시설·타일벽화 조성 |
자료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삼일공원의 유래」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으며,
삼일공원의 역사와 사당동 도시개발의 변화 과정을 연결해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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