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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깨달음

외할머니와의 추억 소환 여행

by blue river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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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외할머니는 100세를 몇 해 남긴 향년 96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모든 식구가 외할머니의 편안한 영면에 감사해하며 장례식을 치렀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외가에서 잠시 지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의 어머니는 삼 남매 중 둘째인 나를 여름방학 시기에 외할머니댁에 맡기셨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맞벌이하셨던 어머니는 동생은 어리고, 오빠는 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나는 여자아이고 취학 전이라 외가로 보내기로 했던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잠시 할머니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당시 외가댁에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외삼촌들이 있었다. 당신 자식도 있고 농사일도 바쁜 시기에 나를 맡기고 가는 맏딸이 야속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도 이제야 해본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흔쾌히 나를 받아주셨고, 나는 그렇게 외가에 잠시동안 머물게 되었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어린 내게 외갓집은 헤어짐의 아픔과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최초의 공간이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농사일로 바쁘셨고, 어린 나에게 조용한 시골의 하루는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보고 싶어 산마루에 올라가 멀리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 기차를 타면 집에 갈 수 있겠지하며 흐느꼈던 순간은 어렴풋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의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가끔은 재밌는 일도 있었다. 외할아버지를 따라 낫을 들고 나무하러 산에 갔던 일이나, 아궁이에 밤을 넣고 익기를 기다리면서 불멍했던 것도 이제는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추억이다. 학창시절 나의 꿈속에 자주 등장했던 외갓집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 시절 안동시에서 비포장도로를 한참 들어가야 했던 와룡면에 있는 작은마을은 조용한 곳이었다. 동네 사람들 외에 외지인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내겐 하루하루가 지루한 일상이었다.

 

어느 날 무료한 내게 외할머니는 감나무에 끈을 달아 그네를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신나서 그네를 탔는데 그리 오래는 못 탔다. 가지가 썩었는지 몇 번 만에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속마음으로는 할머니한테 한 번 더 만들어 달라고 보채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와는 다른 성향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그런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어릴 적 나는 소심하고 사려 깊었던(?) 아이였던 같다.

 

가끔 동네 어른들은 못 보던 나를 보면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시도하곤 했는데,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할머니와 5일 장에 갈 때는 버스를 탔는데 그때도 이웃 동네 어른들은 내게 말을 걸었지만, 마찬가지로 잘 못 알아들었다.

5일 장은 내게 특별한 경험을 한  곳이었다.
직접 키운 작물을 파는 모습을 보는 일이나 작물을 판 돈으로 남의 물건을 사는 것도 신기했다.

외할머니는 주로 고추를 팔기 위해 장에 가시곤 했는데 그중 하루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외할머니는 성격이 꼿꼿한 편이어서 고추를 사려는 사람들과 웬만한 고춧값 흥정에도 지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여러 사람과 가격을 흥정한 끝에 5천 원에 고추를 한 포대를 파셨다.

 

그리고는 힘들게 판 고춧값으로 내게 붉은색 바탕에 별 문양이 있는  25백 원짜리 원더우먼 치마바지를 사주셨다. (당시 TV에 방영했던 원더우먼이라는 미국드라마가 있었는데, 꽤 인기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5천 원의 절반이나 내 옷을 사는 데 소비된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빨간색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해 여름 동안 원더우먼 치마바지를 입고 지냈던 것 같다.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소환해보니 시골에 있었던 시간은 잠시였지만 생각보다 에피소드가 많은 것이 놀랍다. (이것이 당시 나를 시골로 보낸 엄마의 빅픽쳐였을까??)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내겐 경상도 지역의 식단은 잘 맞지 않았다. 솔직히 너무 맵거나 짰다. 그래서 나는 반찬을 잘 먹지 못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말없이 김치찌개에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처럼 동글고 긴 부산어묵을 어슷하게 썰어 넣어 끓여주셨다. 그러면 나도 말없이 잘 먹었다. 그때는 그 어묵이 참 맛있었다. 그렇게 외할머니와 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마음을 교감했던 것 같다.

여태껏 외할머니와의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말없이 외손녀를 위해 배려하신 일들이 많았다는 것에 새삼스럽고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동안 외할머니방식의 말 없는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

할머니와의 추억 소환 여행에서 기억해내지 못한 일도 많고, 기억하고 있는 일도 있겠지만 기억의 오류로 잘못된 기록을 남길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할머니! 그동안 할머니의 마음을 잘못 헤아려서 죄송하고, 또 마음으로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진심으로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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